티스토리 툴바


전자신문이 지난 17일부터 게임 기획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게임의 속성에 대한 시리즈(5회 완료), 9월중으로는 게임 규제에 대한 기획, 10월에는 게임의 미래에 대한 얘기가 나갈 예정입니다. 기획을 시작하며 ET칼럼에 게임 등 새로운 미디어가 처음 나올 때의 기성세대 불안감과 그에 대한 열린 시각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앞으로 게임 기획 기사 내용들은 블로그에 맞게 잘 쪼개 수시로 포스팅하겠습니다~

--------------------------------------------------------------------------------------------------------

며칠 전 지하철을 타려고 개찰구에 들어가려는 순간 누군가 ‘저기요∼’ 하고 부른다. 50대로 보이는 중년 아저씨 한 분이 좀 도와달라며 돈을 내미는데 알고 보니 지난 5월 설치한 카드형 1회용 승차권 판매기 사용법을 몰라 헤매다 나를 찾은 것이다. 이용 방법과 도착역에서 카드 보증금을 꼭 찾아야 한다는 얘기를 알려드리니 고맙다며 “자꾸 새로운 기기들이 나오니 익히는 것만 해도 힘겹다”고 하소연한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1980년대 초반 현금입출금기(ATM)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은행에 가면 기기 사용법을 알려달라거나 돈을 대신 찾아달라고 부탁을 하는 어른이 꼭 몇 분씩 있었다.


기 술 발달과 시장 원리는 늘 새로운 상품, 기기, 서비스, 미디어를 만들어내지만 이것은 열광과 동시에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편함이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익혀야 하고, 시간을 투입해야 하고, 일상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히 호기심이 강하지 않은 이상 보통의 사람은 늘 가는 길과 늘 먹는 음식, 늘 만나는 사람 사이에서 맴맴 돌게 된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주인공 멜빈 유달(잭 니컬슨)은 생소한 것의 불안감이 강박증으로 나타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런 경향은 특히 어른 혹은 기성세대에게서 더 크게 나타난다. 이미 많은 세월을 살아 ‘인생은, 세상은 이런 것’이라고 굳은 생각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클레이서키 뉴욕대 교수는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저서에서 “일반적으로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이 잦은 실수를 하게 마련이지만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는 경험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실수한다”고 말했다.


전자신문이 얼마 전부터 포스트게임이라는 게임 연구기획을 시작했다. 짐작은 했지만 막상 많은 사람을 만나 보니 게임을 보는 인식은 너무 차갑다. 아이는 게임을 하고 싶어 난리고 어른들은 이를 못 막아서 난리다. 공부할 시간도 모자란 판에 게임할 시간이 어딨냐고 목청을 높이는 엄마들도 많다. 국민의 70%가 게임을 하고 앞으로 금융, 교육 등 각 분야에 안 쓰일 곳이 없는 것이 게임이다. 차가운 인식으로 인해 게임의 가치와 잠재성까지 묻혀서야 되겠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새 미디어는 늘 공격을 받았다. TV가 처음 나왔을 때 기성세대와 언론은 폭력을 조장하는 도구라고 공격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비난의 대상이 영화와 만화로 바뀌었다. 교양 덩어리 책이라고 다르지 않다. 1764년 출간된 호러스 월폴의 ‘오트란토 성’은 왕과 그의 죽은 아들의 약혼녀의 섹스를 다뤘다는 이유로 공격의 표적이 됐다. 19세기 들어 인쇄기 성능이 좋아지고 글자를 읽는 사람들이 늘면서 영국과 미국에선 대중잡지와 소설들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정치인과 기성세대들은 이를 비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리나라 역시 18세기 상업적 목적으로 출간된 ‘방각본’ 소설들이 문제가 됐었다. 당시 전쟁이나 애정을 주로 다뤄 ‘읽으면 패가망신’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오늘날에는 ‘한글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찬사를 받는다.

무 엇이든 익숙해지고 나면 그 이전에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 법이다. 역사적인 경험이 불필요한 게 아니라면 게임에 조금 더 열린 시각과 따뜻한 시선을 가져보면 어떨까.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너무 좋아 죽고 못 사는 게임 아닌가!

조인혜 미래기술연구센터 팀장 ihcho@etnews.co.kr
Posted by 파란잉어

7.7 DDoS 사건이 어느덧 한달을 넘어섰다.
엊그제 트위터를 겨냥한 DDoS 공격이 있었다는 뉴스도 접했지만 7.7 대란이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
DDoS에 대한 보고서도 쓴 마당에 벌써 7.7 대란을 야금야금 잊어 간다는 사실에 내심 당혹감을 느낀다. 

[광고]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는 7.7 DDoS 해킹 대란 한달을 맞아 사이버 테러와 IT코리아 현주소(부제 : 7.7 DDoS 해킹 대란의 원인과 현실적 대안 모색)란 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전자신문 리포트몰에서 무료로 내려받기 하실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두팔을 걷어부치고 [사용자 인식 부족]을 탓하고 나선데는 충분히 비빌만한 언덕이 있었구나 하는 자괴감과 나 역시 보안 불감증에 걸린 사용자란 생각까지 이르자 국내 보안 시장에 미안감이 들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난 7.7 DDoS 대란으로 불편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평소 정부 사이트에 접속할 이유가 없었고, 조선일보 사이트 등도 굳이 찾아가서 이용하지는 않았다. (톡 까놓고 애기해서 네이버만 잘 뜨면 인터넷 이용에 별 불편을 느끼지 않는 초딩 수준의 인터넷 이용 행태라는 표현이 적합할듯 하다.) 

애써 불편을 찾자면, DDoS 공격으로 인해 인터넷 뱅킹도 위험하지 않나? 하는 우려 정도....하지만 이도 얼마안가 통장 잔고도 얼마 되지도 않는데...뭐 이런 낙천적 사고(?)로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러면서도 무료 백신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최소한의 보안 의식은 갖춘 사용자라 생각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보안 전문가들은 악성코드가 확산되는 주범으로 액티브액스와 웹 하드를 통한 다운로드 등을 지목하고 있다. 둘 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터라 악성코드 확산에 일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액티브액스를 설치할거냐는 질문창이 뜨면 0.1초의 고민도 없이 Yes, Yes를 눌러 신속하게 설치를 한다. 액티브액스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클릭을 여러번 해야하는 귀찮음의 발로였을 뿐, 나의 클릭 몇번이 국내 웹 보안망을 갈기갈기 찢고 있음은 인식하지 못했다. 액티브액스의 범 국가적 애용(?)의 이유가 되고 있는 웹 브라우저 역시 인터넷 익스플로러 이외의 다양한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 귀찮음과 익숙함을 이유로 한번도 인터넷 익스플로러 이외의 제품을 써보지 않았다. 그것도 IT 전문 미디어 종사자가 말이다. 

얼마전에는 가입하지도 않은 리니지 게임 동의 완료 메일이 날아왔다. 벌써 두번째다. 메일이 처음 왔을때는 신속하게 고객지원센터에 전화해서 내 명의가 도용당했다고 신고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보안에 발빠른 대응에 내심 뿌듯했다. 난 보안불감증자가 아니란 생각도 했다. 이런 생각은 게임 동의 완료 메일이 한번 더 오는 순간 깨졌다. 

"고객지원센터에 전화해도 똑깥네"....라는 생각과 "아직도 리니지 인기가 상당한가 보네"라는 생각을 번갈아 하면서 메일만 삭제하고 말았다. 내가 직접 결제 한 것도 아닌데..뭘...이러고 지나쳤다.        

보고서를 발행한 뒤 이런 제반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본인은 보안 불감증자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겸허히 수용하고 반성했다. 하지만 동시에 억울했다. 내가 왜 보안 불감증자가 됐을까를 생각해보면, 내 탓도 있지만, 더 큰 책임은 다른데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액티브엑스를 Yes, Yes 하면서 능숙하게 설치하게 된데는 국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선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것도 은행마다 다 설치하다 보니 이골이 났을 뿐이다. 온라인 게임 결제를 하다보니 더 능숙해졌을 뿐이다. 또 내 명의가 도용된 것도 각종 사이트 회원 가입때 이름을 묻고, 주민등록번호를 묻고, 관심사도 묻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의 탓이 크다. 그들은 각종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개인 정보 활용에 동의를 강요한다. 개인 정보 활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회원 가입이 불가능하다.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온라인 공간을 떠돌게 된데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보안 불감증에 대한 후회와 반성은 어느덧 허탈함과 분노로 이어졌다. 은행이나 온라인 게임 업체를 비롯한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을 방관 내지 지원하는 정부가 어쩌면 더 큰 보안 불감증에 걸려 있다는 생각에서다. 보안업체들 역시 마찬가기다. 현 상황을 개선 시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시장 환경을 탓하고, 기업들의 요구만을 되뇌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용자의 인식 부족을 국내 보안 환경 개선을 위한 최선의 대안안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결국 보안 불감증은 보안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정부, 전문기업으로서 책임감을 망각한 보안업체, 개인 정보 수집에 혈안이 된 인터넷 서비스가 삼위일체되어 만들어 낸 괴물인 것이다. 난 거기에 감염됐고, 길들여졌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무료 백신 프로그램을 매일매일 업데이트하고, 디스크 검사하고, 명의 도용시 고객센터에 열심히 전화하는 일뿐이다.          
Posted by 효복아빠

인터넷 실명제, 제한적 본인확인제 등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아, 그때 유튜브의 제한적 본인 확인제 거부 및 한글 댓글 업로드 기능 폐쇄했을 때구나.

사실 지금도 잠복한 문제다.

인터넷에서 실명제가 이뤄져 모두가 민증 까고 얌전히 넷 생활하는 세상을 바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인터넷의 익명성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겐 대부분의 서비스에 e메일 주소만으로 가입 가능한 미국 웹서비스들은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아름다운 시스템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실제로 최근 미국의 메이저 웹서비스들을 보면 실질적으로 사용자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힐 것을 상당히 강하게 요구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를테면 페이스북에 가입할 때는 '반드시 실명을 적으라'는 안내 문구가 나온다 (강제성은 없지만). 구글의 블로거닷컴 블로그들 옆에 붙은 (사진 포함한) 프로필은 어떤가? 다른 블로거닷컴 블로그에 댓글 달 때도 표시되는 이 프로필은 구글에 등록해 온 세상에 검색되게 할 수도 있다. (프로페셔널한 지식노동자들에게 유용할 것이다.) 텍스트큐브 블로그들의 댓글란에 달린 프로필 사진을 보며 나는 블로거닷컴의 프로필 정책이 텍스트큐브에도 일관되게 적용되는 느낌을 받는다.

워드프레스 댓글에 달린 프로필 사진, 디스커스 댓글 시스템에 달린 프로필 사진은 어떤가? 이들은 모두 프로필에 등장한 사람이 넷 전반에 걸쳐 일정한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은근히 압박한다. 내가 단 댓글이 어느 사이트나 쫓아다니는 디스커스를 생각해 보라.

트위터 역시 가라로 등록이 가능하다. 가장 최근에는 허경영 본좌님의 트위터 계정이 가짜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아, 총재님!)

하지만 트위터 등록할 때 실명과 실제 사진을 등록하라는 권고를 받는다. 자기 실명이나 사진, 아니면 자신을 알 수 있는 어떤 정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신뢰성에 의심을 사면서 주변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적어도 트위터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 교류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결국 미국 웹서비스들은 사용자들에게 실명을 까라는 요구는 하지 않지만 적어도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할 것은 요구하고 있다. '일관된 정체성'이란 곧 넷 상의 자기 언행에 대한 책임감이다.

굳이 민증을 까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요구되는 책임 있는 행동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특히 프로페셔널 지식 노동자들은 자신의 신원을 그대로 밝히고 있다. 이는 개인 브랜드를 파는 그들의 업의 특성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자신의 모습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정체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아마 이는 주민등록증 체제가 없는 미국에서 실제 인간 관계가 발생하는 SNS에서의 익명 훌리건들의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업계와 사용자가 직조해 낸 문화일 것이다. 혹은 보다 유효한 사용자 데이터를 얻기 위한 인터넷 업계의 상업적 이해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어찌됐건 업계와 사용자의 이해 관계가 얽히면서 자연스럽게 자율적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등장한 인터넷 세계는 현실 세계와 비슷하다. 나의 정체성이 대부분 그대로 드러나는 세상인 것이다. (아, 이것은 인터넷에 피해의식을 갖고 계신 보수 어르신들이 바라는 세상 아닌가?) 인터넷은 현실과 떨어질 수 없는, 현실의 도구임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기 때문일까?

얘기가 갑자기 엉뚱한 곳으로 튀지만, 이 시점에서 가상세계로서의 인터넷과 게임을 비교한, 최근 만난 어느 교수님의 말이 떠오른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또 다른 나를 창조할 수 있는 가상세계로 생각했다는 것.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넷은 현실의 연장이란 점이 명확해지는 반면, 게임이 또 다른 나를 창조할 수 있는 사이버 세계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뉴스레터에는 '인터넷'과 '게임' 기사가 함께 스크랩되어 있지만, 게임과 인터넷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얘기인 듯 하다.
흠, 뭐 어디서 다시 만나겠지~
저작자 표시
Posted by 낮은목소리